비건/베지터블이란?
비건/ 베지터블은 요즘 들어 선호하는 식습관 중에 하나로 이슈 되고 있습니다. 그럼 베지터블이란 역사 또는 유래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비건 VÉGÉTALISME: 일반적으로 콩류나 곡물류 녹색채소류, 식물성 기반의 식물성 기름 위주로의 식품 섭취 방법입니다. 철학적인 이유 등으로 꿀을 포함한 조류, 포유류, 우유, 달걀 등 모든 동물성 식품류의 1도 섭취하는지 않는 식습관을 말합니다. 비건은 채식주의의 일종입니다. 비건은 넓은 의미로 채식 위주의 섭취만 하는 식생활만을 일컬으는 것이 아닌 모피, 가죽과 동물제품과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제품을 소비하지 않는 소비문화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고로 완전 채식주의자를 말합니다. 비건은 베지터리언의 하나의 분류입니다. 그럼 베지테리언의 종류에 대해서 다시 한번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Vegetarian(채식주의자/ 菜食主義者)는 종교, 윤리, 건강, 환경 보전, 경제적 요인, 육류 비선호, 문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식물만 섭취하고 고기와 관련된 모든 식품을 먹지 않는 절제 식단을 말합니다. 베지테리언은 동물성 식품을 전부 섭취하지 않는 단계와 일부분만 먹거나 먹지 않는 등 섭취 비중에 따라 다섯 단계로 구분합니다. 베지테리언의 역사에 대해서 먼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채식주의의 개념이 처음 나타난 곳은 고대 그리스와 고대 인도에서 시작하였습니다. 종교의 불살생(不殺生)의 종교 계율에 따른 것과 철학자들에 의해 출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대 처음으로 고의로 고기를 기피한 것은 일시적인 성직자의 정화 기능과 종교의식과 관련되어 종종 나타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반 대중에게 고기를 먹지 않는 식사를 지지하기 시작한 것은 BC1,000년 중엽 유럽 지중해 동부 직역과 인도의 철학 적자들의 일부에서부터 거의 비슷한 시기에 각각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유럽 지중해 지방의 금육은 사모스의 피타고라스(BC530경)와 그의 제자들의 가르침에서 처음 기록되었다고 합니다. 피타고라스파는 고기와 콩과 아욱까지도 먹지 않는 특정 의식에 금기를 일반화시켰습니다. 피타고라스파는 인간의 박애심을 강조하였는데 인간이 모든 동물들과 동족 관계에 있으므로 동물을 음식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였습니다. 그들은 이집트 사제의 관습 또는 나일강, 티그리스강, 페르시아 만을 잇는 반월형의 농업지대에 살던 개인적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합니다. 고대 그리스 플라톤(Plato:BC 427년 ~ BC 347년, 고대 그리스 철학자) 이후에 에피쿠로스, 플루타르코스 등의 쾌락주의 철학자들과 신플라톤주의자들은 고기를 기피하는 것을 권장했습니다. 이들은 예배 시에 살아있는 제물을 바치는 행위를 비난했고, 사후 영혼의 윤회(輪廻:인간이 죽어도 그 업에 따라 육도의 세상에서 생사를 거듭한다는 불교와 힌두교의 교리) 및 우주 조화설에 대한 탐구와도 연결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인도에서는 불교도와 자이나교도들이 불상생의 종교적, 금욕적 기반에서 식량을 위해 동물을 죽이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이 생각 및 사상은 곧 브라만 사회(Brahman:힌두교 카이스트 제도의 최상의 계급인 성직자, 학자)에서도 수용되었으며, 그중에서 가축이 "소"에 적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지중해 지역과 마찬가지로 7세기 인도에서 힌두 교단의 새로운 기풍이 거세지면서 불교 교단의 쇠퇴했으나, 불살생 사상(ASHIS)은 금육식에 대해 자연스럽게 적용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AD1,000년까지 많은 상류계급인 비슈누파교도 (힌두교의 유력한 일파), 일부 하류계급에게 지속적으로 전파되었습니다. 불교의 시작인 인도와는 달리 북동아시아지역 즉 중국, 일본, 한국에서는 동물의 비 살생에 대한 이념이 덜 엄격하였고, 육류의 섭취를 하기도 했습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어류가 금육식의 대상에서 제외되기도 하였습니다. 인더스 강 서쪽 아라비아에서 세력을 떨친 일신교(一神敎) 전통은 채식주의에 대해 덜 호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성서에는 낙원의 최초 인간들은 육식을 하지 않겠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육식은 노아의 대홍수 후에 허용되었는데, 동물의 피는 생명으로 간주하여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유대 금욕주의자들과 일부 초기 그리스도교 지도자들은 고기를 먹는 행위는 안락/ 탐욕/ 잔인/ 사치로 칭하여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다수의 그리스도교 수도원에서는 육식을 금하는 규칙을 두었고, 이를 어긴 일반 신자들은 고해성사를 해야만 했습니다. 많은 이슬람교도는 채식주의에 대해 적대적이었으나 후에 이슬람의 수피교(이슬람교의 신비주의적 분파) 도의 영적 구도자들에게 금육식을 권장했습니다. 그 후 16세기에 인도의 무굴 제국(16C~19C 인도의 이슬람 왕조)의 악바르 황제(인도 무갈 왕조 제3대 황제:재위 1556~1605)는 금육을 권장했습니다. 근대 15C 이후에 들어서 세계의 생활상이 서유럽을 기반으로 변화되면서 채식주의에 대한 새로운 면에 직면하였습니다. 18C 유럽에서 퍼인 인도주의(人道主義/humanitarianism:인류의 공존을 꾀하고, 복지를 실현시키려는 박애적인 사상)의 일부로, 박애 사상의 기본과 더불어 동물 수난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피타고라스파의 육식 반대가 제기되었습니다. 특정 개신교 집단은 성서에 대한 완전론적 봉독(경건한 마음으로 경문이나 법문을 받들어 읽는 것) 즉 종교의 교화의 방법, 방편으로 금욕을 교리로 중시하였습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식인 볼테르(Voltaire:1694~1778/ 프랑스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비판적 지식인)는 금욕을 찬양하였고 이과 같이 다양한 철학관을 지닌 지식인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실행하였습니다. 19C 초 채식주의자들은 육식을 금하는 것은 물론 음주 또한 비난하였고, 풍부한 양의 육식을 소비하는 것과 대비되는 소식(小食)하는 것은 영양학적으로 장점이라는 것과 조리를 하지 않고 생식(生食)하는 것 또한 장점이라고 지지하였습니다. 19C에는 채식주의 운동을 하기도 했으며, 그로 인해 20C초 영어권 국가에서는 채식을 하지 않는 일반 식사를 하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결정적인 결과는 피넛버터/ 콘플레이크 같은 새로운 식품이 등장하였는데 이는 미국의 채식주의자에 의해 발명 만들어져 지금 까지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식재료가 되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채식이 단순히 특정 질병을 치료하는 섭생/ 식습관의 하나로 관주 되었습니다. 그럼 채식주의라는 용어는 어떻게 유래되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채식/ Vegetable Food 라는 단어가 아닌 라틴어의 “Vegetus”의 ‘활동적인’, '생기 있는' 의미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채식주의 운동은 근대의 레프 톨스토이(Leo Tolstoy:1828~1910/19C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가 겸 사상가) /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1856~1950/17C이후 영국의 작가 및 사상가) 같은 윤리적 성향을 지닌 사람들과 제7일 안식일 예수재림교, 신지론자 같은 특정 종파에 의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들과 같은 채식주의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특수 기관도 설립되기 시작되었으며, 영국과 미국 필라델피아의 바이블 크리스천 파는 전국채식주의자협회들을 설립하는데 앞장섰으며, 이 협회들은 잡지를 발간 하기 시작했습니다. 1874년 영국에서 최초로 채식주의자협회가 발족되었으며 1889년에는 임시적으로 세계연합 조직이 설립되었고, 1908년 국제채식주의자협회/ Vegetarian Society로 영구 조직화되었습니다. 그 후에 인도의 전통과 불교 신앙을 가진 유럽 및 서양인들이 협회에 유입되기 시작되었습니다. 특정 유럽 국가에서 채식주의자만이 이용할 수 있는 식당, 학교, 휴양 소등 이 생겨 났으며, 인도의 철도회사에서는 채식주의자와 비 채식주의자를 위한 이중 식당 설비 시스템을 개발하기도 하였습니다. 채식협회는 꾸준히 단백질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콩류, 견과류, 치즈, 달걀 등을 이용한 요리책이나 논문을 바탕으로 한 음식과 약품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다양한 식품과 상점들이 취향에 맞는 제품들을 꾸준히 개발 판매하고 있으며, 채식주의 식생활로 전환할 수 있는 고단백 채소음식을 가공 개발하고 있습니다.